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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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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씨 계란찜 먹다 창밖을 본다 눈 속에서 비둘기 먹이를 찾는다 가만, 저 놈도 본시 알에서 나오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찜 속에 저 놈과 동족이 숨어있는 거 아닌가 눈을 헤집는 뾰쪽한 부리 퇴화된 날개 푸드덕거리는 닭이 내 뱃속에서 부화하고 있다는 건데 살이 되고 뼈가 굳어져 맨발로 눈 헤집고 다..
황홀한 주름 물감빛 원피스 구겨진 주름을 따라간다 좁은 오솔길처럼 구비 구비 이어지다 도시의 뒤란을 지나 공원 벤취에서 겹쳐지고 낯모를 인정과 희미한 사랑의 그림자에 가슴 조였던 걸까 쉽게 펴지지 않을 구김 열기 머금은 다리미질에도 지워지지 않고 사방으로 엇갈린다 구불구불 이어지는 신작로 희미..
뱅뱅 원반 같은 운동장 이 악물고 뱅뱅 돌다가 숨 가빠 그만 멈추려는데 두 다리 제멋대로 뱅글거리는 거라 힘들어 죽겠는데 멈춰지지 않는 거라 내가 달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운동장이 멋대로 나를 굴리는 거라 공깃돌처럼 톡톡 튕기는 거라 하도 기막히고 어이없어 가쁜 숨 할딱이며 생각하니 ..
꽃씨 석탄 같은 어둠 어딜 괭이질해야 할까 빛 한줄기 없는 물컹한 어둠의 흙더미 벗어날 수 있을까 가물가물 뇌리 스치는 기차소리 그리 멀지않은 것 같다 어둠의 두께 얼마나 깊은 걸까 허우적 허우적 팔을 뻗는다 공기같이 가벼운 흙더미 더듬더듬 파들어 간다 아득히 파들어 갈수록 점점 깊어만 가는 ..
등대 저기가 어디일까 어둠속 깜빡거리는 불빛 땀에 젖은 이불에 둘둘 말린 몸뚱이 으스스 밀려오는 오한 누가 여기 건져놓은 걸까 어렴풋이 드러나는 창문 컴퓨터 모니터 희미한 실루엣 미처 끄지 않은 전원 깜빡 거린다 저 속 일렁이는 파랑 철없이 뛰어들어 표류하는 나를 건져준 게 저 불빛일까 살 부..
순간 사과상자 같은 강의실 책상들 종횡으로 분열을 하고 사람들 황남빵 처럼 박혔어요 황남빵이 된 거 같아요 이건 원치않던 거예요 답답하고 목말라요 물 한 컵 앞에 두고 천정을 쳐다보는데 거미 하나 매달려 노려보네요 갈옷 입은 여자 등 뒤 책상에 얹어놓은 물 컵 위태로와요 불온한 생각 해일처럼 ..
시를 읽으며 울다 아들은 컴퓨터 아내는 연속극에 빠져 머물 곳 없는 유랑민처럼 방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베란다로 쭈삣거리다 아무도 관심기울이지 않는 유랑을 접고 선인장 아래 쪼그려 앉아 가슴 저미는 시를 읽는다 티비에서 주인공 실연에 엎드려 울고 아들의 자판소리 탁탁 가슴을 친다 흙먼지 지분대는 거리 발..
질주 그녀에게 달려가던 속도가 이랬던가 엑셀레이터에 얹힌 발이 차창에 뻗은 손바닥에서 전달되는 물컹한 느낌 탓인지 좀체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다 팔십의 속도에서 손바닥 둥글게 잡히는 보드란 물풍선 같은 느낌 그녀 젖무덤 냄새 코끝을 스친다 광고탑 여배우 실눈 뜨고 손 내밀고 달리는 질주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