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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한 발자국 신설동우체국 지나다보면 물컹한 기억 신발에 붙은 진흙처럼 끈끈하다 혜화 돈암 수유 창동까지 날마다 배달되던 발자국에 무수한 발자국 또 덮여도 지나온 흔적 마다 쇠비름 노란꽃 피어난다 그녀 내리던 창동역 1번 출구 등나무 아래 서서 오가는 발자국 쳐다보면 하루살이 군무 같다 무수히 엉키..
누가 두드리고 있다 비바람 덜컹대던 날이었다 빗속을 달리던 전철이 지하로 들어서자 창문이 다급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둠 저쪽에서 누군가 애타게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흔들리는 문을 쳐다보았다 열어달라 애원하듯 두드리는 소리 텅 빈 객실안에 요동치자 기차 멈추어서고 흔들림 이내 잠잠해졌다 안도의 한숨..
경계에 서다 지하상가를 두리번대다 이만원 짜리 바지를 사입고 서울시민이 되었다 구두 삼 만원, 와이셔츠 이 만원 아내가 사준 속옷 가격은 모른다 십만원 안되는 돈으로 서울시민에 합류하니 서울도 별게 아닌 듯 우쭐하다 출출한 허기 채우려 돈나물에 보리밥을 비벼먹고 도발적인 글을 쓰는 여자 만나러 스타..
눈동자 수족관을 어슬렁거리다 놈의 눈과 마주치는 순간 텅 빈 눈동자 속으로 발을 헛디뎠어 깊은 망막 속으로 빠져들며 가라앉았다 떠오르기를 반복하며 허우적대는 눈앞 멀리 횟집 수족관을 서성거리는 사내 어디서 보았더라 빙빙 소용돌이치는 머릿속 가파른 해협을 거슬러 해마를 타고 달려가던 물고기..
네모 난 세상 문 나서면 반상에 던져지는 장기알 같다 남들 눈 돌린 곳 이미 밟고 지나간 곳 누군가 죽어 떠난 자리 방패 하나 없는 졸(卒)이 되어 누굴 잡을지 누구에게 잡힐지 위치와 임무도 모르고 바람부는 대로 밀려다닌다 포위된 줄도 모르고 시작과 끝도 모른 채 변방에 엎드려 있다 머리맡에 터진 포(包) 한방..
모기 귓가 앵앵 거리는 모기를 잡다 발 아래 뒹구는 놈을 본다 저 가는 다리 습자지 보다 얇은 날개 겨자씨 보다 못한 몸으로 산 같은 나를 물어 허기 때우려 한 걸까 하수구에서 몇 생을 구르다 겨우 날개를 달고 하필 이 산허리까지 올라와 나를 무는 게 한 끼 허기 때우려함 일까 은하 저편 가뭇한 별 나라..
아아아악 봄날인데 칡넝쿨 같은 마음 어디로 뻗어나가 어디를 휘감아야할지 모르겠어요 수세미 담장을 타고 창문 기어오르고 얼음에 갇혔던 돌의 눈물 낮은 곳 찾아 꼬불꼬불 흘러내리는데 어디로 발걸음 디뎌야 감아올릴 우듬지 찾아낼 수 있나요 바람은 아지랑이처럼 충만한데 왜 이렇게 주변은 팍팍하기만..
새벽 귀가 왁자하던 회식이 끝나고 인적 드문 골목에 나서면 그 많던 사람들 다 어디로 갔나 상처 난 은행나무 옆엔 부패해가는 쓰레기봉투 가시돋힌 슬픔만 거리에 널려있네 어디를 밟아야 저 슬픔의 압정들을 피할 수 있나 안주가 되던 술자리 슬픔이 가을대추처럼 다닥다닥 걸려있던 방안 벽지 속 시들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