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꽃 詩/전건호
이빨갈던 겨울이 지났다
사내 모스부호 같은
뜻모를 싯귀 읊조리던 뒤란
뒷간 벽돌 사이로 배롱꽃 붉다
벌들 처마 밑 붕붕거리고
가슴앓이 하던 생애는
마침내 화르르 몸에서 꽃잎 쏟아낸다
몇 달째 던가
붉게 날 세운 칸나 꽃에 심장 찔린 건지
가슴 앓이하던 배롱꽃
내게 들어와 만발한 것인지
뒷간에 앉기만 하면
붉은 꽃 배롱도 그리며 떨어진다
삶에 힘을 주어야 하고
속앓이 해야 하는 날들
실핏줄 하나 하나를 곤두세우며
붉게 엉키더니
담쟁이 넝쿨에 감겨
몸비틀며 파르르 떨던 배롱꽃
난산하듯 진통하며 꽃잎 쏟는다
턱에 걸릴 듯
숨 가쁜 비탈길 너머
먼지 자욱한 하늘엔
낮달 점점 핼쓱해지고
내 안에서 일어서는 관능과 음모
화간하듯 검붉게 속앓이하던 생 애
뒤엉켜 만발하다
뒷간에 앉아 열꽃을 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