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건호시

뱅뱅

원반 같은 운동장

이 악물고 뱅뱅 돌다가

숨 가빠 그만 멈추려는데

두 다리 제멋대로 뱅글거리는 거라

힘들어 죽겠는데

멈춰지지 않는 거라

내가 달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운동장이 멋대로 나를 굴리는 거라

공깃돌처럼 톡톡 튕기는 거라

하도 기막히고 어이없어

가쁜 숨 할딱이며 생각하니

여기까지 온 게 내 맘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거라

바람이 이리 저리 나를 밀었고

길들이 나를 둘둘 말아

꾸역꾸역 소화시켰던 거라

먼 유목의 땅과

이국의 강변 걷는 꿈 부풀었으나

알지 못하는 힘이

원반 속에 밀어 넣은 거라

누가 공깃돌처럼 나를 굴리며

즐기고 있다는 거라

평생 쳇바퀴 속 돌고 돌면서도

꿈에도 눈치 채지 못했다는 거라

이제야 그걸 어렴풋이 알고

트랙 뱅뱅거리면서

담장밖 흘겨보며 씩씩 거리는데도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멈출 수 없다는 거라

 

2008 불교문예 여름호

'전건호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렛미씨  (0) 2008.06.30
황홀한 주름  (0) 2008.06.30
꽃씨  (0) 2008.06.19
등대  (0) 2008.06.19
순간  (0) 2008.0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