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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까치밥

 

지구의 회전판을

잠시 멈출 수 없을까

날마다 넘겨지는 일력(日曆)

한 쪽 쯤 까치밥으로 남겨둘 수 없을까

눈 속 봄동 파릇 올라와 입맛 돋구 듯

구멍 뚫린 고목의 곁가지처럼

싱그러운 스무 살에 남겨둔

생의 한 켠에 돌아가 시름 덜 순 없을까

늦은 가을 호호백발이 되어

백년을 어긋나

수십 생 비껴만 가던 인연

비워두었던 달력의 빈칸에서

문득 만나 활화산처럼 뜨거워질 순 없을까

처녀지로 밀봉해 남겨둔

그 날, 그 거리 돌아가

곡정초 처럼 무성해 볼 순 없을까

서까래 검댕이가 슬고

관절 삭정이 툭툭 부러지는 소리 날 때

오월의 빛깔로 남겨 두었던

달력의 빈칸 휴가병처럼 돌아가

휴면계좌 잔고를 찾아 쓰듯

젊은 날 이루지 못했던

사랑 뜨겁게 되찾을 순 없을까

 

* 곡정초 : 가을날 벼를 베고 난 후 파랗게 올라오는 새 순

 

2008 문학마당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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