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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몽유에 들다 2

 

사랑하고 이별하는 꿈

깨어있다 착각하고

지지고 볶는 이 순간

절반씩 다른 생 나누어 살아가는 셈 아니던가

간 밤 꿈 속

낯선 땅으로 부나비같이 흘러갔어

동구밖 느티 아래

웬 쪼그맣고 까무잡잡 못생긴 여자

나를 보더니 반색하며 반기더군

왜 이제 왔느냐고

입술 쪽쪽 빨아대며 끌어안더니

어서 가자고 잡아끄는 거야

쓰러져 가는 사립을 밀자

사랑채엔 병든 아비

인기척에 방문을 열고

딸년에게 꽁시랑 대다

사래 들린 기침을 하고

그 기침에 천막 같은 하늘 풀썩 내려앉더니

함박눈 펑펑 내리는 거였어

그 여자 군불을 때 밥을 짓고

나는 마당을 쓸며 문풍지를 때우는데

눈은 자꾸만 사뭇 내리는 거야

무덤 같은 사랑채에서

아이를 낳고 늙어가던 어느 날

가을 수세미 같은 여자 하나

가슴 저미는 연속극 보면서 눈물을 짜고

그 옆엔 드렁드렁 코고는 사내

저기가 어디더라

어디서 봤더라

누구더라

 

2008 문학마당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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