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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스크랩] 블랙데이

텅 빈 자췻방에 들어오니

사육하는 머리칼이 누에처럼 엎드려있다

풀썩 누운 내 등을 갉아먹는 소리

사각사각 비가 내린다

창살에 달라붙은 빗방울

창문 틈 기웃거리는데

일말의 자비심도 없이 코를 곤다

쓸쓸한 통통배 시동을 거는

등대도 없고 별 마저 없는 밤

예리하게 뱃전을 난도질하는 파도에 놀라

갑판을 구르며 식은 땀 흘린다

하느님 제게 동아줄을 내려주세요

열아흐레 하늘

하얀 반달 바이킹의 해적선이 자꾸만 따라와요

비바람 덜컹대는 창틈

나를 삼키려 매달리는 빗물에

흐믈흐믈 환형동물이 되어 떠내려간다

내일이 아내의 생일인데

전화선 타고 달려오는 막내

어깨 흔들어 깨우는데

축축히 젖어버리는 몸

으스스 밀려오는 한기 

창문 여렴풋이 밝아오고

방바닥에 머리칼 우수수 부화한다

 

2007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봄호

출처 : 시 카페 '밥짓는 마을'
글쓴이 : 전건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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