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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스크랩] 미안하다

늦은 밤 비틀거리다

후미진 골목 꼭 껴안은 남녀를 본다

단단히 붙어있는 청동조각상 같다

한참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껴안을 사람 하나 없는

텅 빈 공원 흙먼지 일어서고

느티나무 가늘게 흔들린다

비틀거리는 몸을 기댄다

청동기적 이별의 순간

가늘게 들먹이던 어깨같이 흔들린다

얼마나 애를 태운거니

언제부터 여기서 기다린거니

어느 허공 날아다니다

이 후미진 곳에 뿌리내리고

나 오기만 기다리고 서 있던거니

관절 마디마디 뭉툭해지고

굳은 살 배겨버렸구나

보이지도 않는 나를 향해 촉수 늘이다

휘어지고 상해 가지 부러졌구나

오지않는 나를 기다리던

우듬지 까맣게 태우다 구멍 뚫렸구나

목마른 기다림도 모른 채

하세월 허공의 뭇별만 쳐다보며

먼지 자욱한 사막에서

절렁절렁 방울만 울리다가

이제야 네게 기대어 눕는다

정말 미안하다


2006 시와 상상 봄호

출처 : 시 카페 '밥짓는 마을'
글쓴이 : 전건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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