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을 깎네요
깎을수록 날카로와지는 연필
조금은 무디어도 좋을듯한데
손가락 베어가며 깎고 또 깎다
이젠 아애 연필깎이에
빙빙 돌려 날을 세우는 중입니다
장날 탁배기 한 사발에 시름 달래고
청솔가지 꺾다 산림계 쫒기던
농투서니 한(恨) 때문일까
나만 보면 오감의 날 세우던 아버지
그러나 이젠 내가 제 성미 못이겨
여전히 퍼렇게 깎고 또 깎으며
날 세우다 반동강만 남았는데
아직도 무디어지지 못하고
왜 점점 날카로와 지는 걸까요
오늘은 나도 아버지처럼
아이에게 날을 세워 닥달하며
아직도 날카로운
깎지 않아도 충분히 예리한 날
궁굴리며 핏대를 올리는데
저 놈 삐뚤빼뚤 연필 제대로 깎을 날
언제일지 모르겠네요, 아버지
2007 시와정신 봄호
출처 : 시 카페 '밥짓는 마을'
글쓴이 : 전건호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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