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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피타고라스의 추억 외 2 / 전건호

 

피타고라스의 추억

                                       전건호

 

 

 

 

풀리지 않는 방정식은 관계 속 절벽이 되었다

 

너를 단념하고 돌아선 갈림길

모천으로 회귀하는 연어의 바다

그리움을 접어야 했던

정오를 실선으로 이으니

도형 속 갇혀 있는 빛과 어둠이 몸을 포갠다

 

침묵의 꼭지점에 저녁별이 뜬다

1분만 더 기다렸더라면

조금만 더 쳐다보았더라면

한번만 더 고백했더라면

역삼각형은 정삼각형이 되었을까

 

사랑이 떠나간 로타리에

비는 내리고 결빙된 빗방울은

머무르고 싶었던 순간으로 물길을 낸다

 

일 인치만 더 파내려갔으면

옆으로 살짝만 비켜섰더라면

조금만 목소리 낮추었더라면

가시 끝 오월의 장미는 피었을까

 

손 한 번 더 내밀었어도

당신과 나 사이를 막아서던

파도의 꼭지점에 저녁별이 떴을까

 

 

 

 

 

 

 

 

 

 

일곱 차크라의 풍경

 

 

 

왼쪽 어깨에 비가 내리고

오른쪽 팔꿈치에 눈이 내렸다

왼팔이 저려올수록

오른손에 받쳐 든 허공에 슬픔이 뚝뚝 맺혔다

 

지울 수 없는 기억들은 가파른 산맥이 되고

고개를 들 때 마다 우기와 건기가 교차했다

 

폭설의 무게를 저울질하던

전나무가 우지끈 부러지면서

숨소리 하나에도 생의 좌표가 변한다

 

산발한 머리를 휘어잡는 아뢰야식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눈보라 몰아치는 3악장을 지나

이윽고 몸속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끊어질듯 현을 따라

쿵쿵거리는 심장박동은 천둥이 된다

눈멀게 하던 사람의 눈빛

촛불처럼 가물거리는 어둠이

수문장처럼 버티는 가파른 4악장에서

삼칠일을 엎드리자

오색딱따구리 탁탁 허공을 연다

 

발걸음 움직일 때마다

떠오른 별자리들이

노 저어 건너야할 바다를 조명한다

 

 

 

* 챠크라 : 영혼에너지와 육체의 움직임이 합일되는 중심을 말하며 호흡과 명상을 통한

수련과정에서 체득되고 극복하여야 할 텅 빈 관문이 된다

 

 

비문증

 

 

어둠에 엎드려 사흘을 울자

불현듯 나타난 까만 점들이

눈물샘 막힌 눈을 들여다보며 떠나질 못한다

 

소용돌이치는 내 마음을

파르르 떨며 들여다보는 비행체

가만히 들여다보면 방울새 같고

잊지 못할 눈동자 같은 거라

 

어느 가슴속에도

둥지 한 번 틀지못하는 나를

뚫어져라 관찰하는 새야

가늠할 길 없는 마음 속

어떤 기류를 기다리는 거니

 

가슴 속 타오르는 불꽃

허공의 뭇별로 타전하는 새야

얼마나 속을 태워야

검댕이 슬어가는 늑골 아래 진흙집 올릴 수 있겠니

 

하얗게 엎드려 쓴 편지가

그리운 꿈에 반사되려면

눈앞에서 파르르 떠는 새야

얼마나 부화를 거듭해야 하겠니

 

 

 

* 비문증 : 망막이 손상되었을 때 하늘이나 흰 면 등 밝은 면을 볼 때, 시야에 작은 점 같

은 것이 보여 마치 눈앞에 모기가 날아다니는 것처럼 느껴지는 증상, 주로 유리체의 혼탁이

나 안저 출혈 등에 의한다

 

 

2012 신생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