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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호리병에 갇힌 가릉빈가 / 전건호

호리병에 갇힌 가릉빈가

            

                                           전 건호

 

 

 

눈빛 하나로 부풀어 오른

구름 한 덩이를 지대방에 눕히자

지난 생 주검위로 쏟아지던 마사토처럼

어둠의 입자가 쏟아졌다

 

빛이 증발될수록 엄습하는 졸음

가물가물 멀어지는 풀벌레 울음

처마를 스치는 불안은 지하수맥을 채운다

 

누가 이 어둠을 걷어줄까

층층나무 위급을 알리는 꽃을 피우지만

꽃그늘 속으로 몸을 감춘 길은 끝내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접동새 가물거리는 의식을 수습한다

내일 아침 햇살이 어둠을 씻어버리면

바람의 머리채를 잡은

매발톱은 어떤 표정으로 눈을 뜰까

 

다급하게 SOS를 치는 동안

풀벌레 질긴 울음은 캄캄한 어둠에 못을 박는다

내가 남긴 발자국은 음표가 되어

바람이 지날 때마다

화르르 꽃숭어리 피어 오른다

 

꽃의 속곳을 넘나들던 바람이

호리병 가득 하얀 어둠을 채우는 벽화 속

꽃그늘에는 누가 엎드려 코를 골까

 

 

 

 

 

 

 

 

 

기러기족의 새벽

 

 

 

 

월요일 첫새벽 현관문을 밀친다

칙칙폭폭

압력밥솥 딸그락 거리는 소리들이

아파트 단지를 끌고 미명을 달린다

 

오백 개의 객실등이 하나 둘 켜지고

충혈 된 가로등 눈을 부빈다

공항의 이별처럼 흔들어주는 손을 뒤로하고

무중력으로 떠나는 인공위성이 된다

 

탑승과 하차가 거듭되는 정거장처럼

인가의 불빛들은 반짝

 

가속도를 높이는 창밖

미명의 서울은 대기권을 떠도는 철새들의 기항지

휴일 동안 여독을 푼 새들은

월요일 새벽이면 어김없이 무중력을 향해 이륙을 한다

 

항로를 따라 듬성듬성 군락을 이루는 인가의 불빛들

안개 속에서 최면을 건다

휴게소 불빛은 주름잡힌 새벽커튼을 여는데

하나 둘 끊기는 라디오 체널

 

겨울과 봄의 틈새를 견뎌 낸

앙상한 가로수마다

날선 바람이 푸른 심지를 올려

좌표를 연다

 

 

 

2012 젊은시인들 사화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