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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바람의 독법/전건호

 

새벽안개 가르며 자유로 질주하는데

뒷자리에 던져 놓은 책장을

바람이 펄렁펄렁 넘긴다

속도 높아갈수록

열려진 창 틈 비집고 들어와 삼매경에 빠져든다

슬쩍슬쩍 건성으로 책장 넘기다가

속도계 가파르게 높아갈수록

책갈피 사연에 푹 빠져

감정 추스르지 못하고 바쁘게 넘긴다

판도라상자 열리 듯

얼핏 보이는 문장에 몰입되는가 싶더니

내가 미처 읽지 못한 은유를 해독한 걸까

제풀에 감정 복받치는지

창밖 흙먼지 일고 차체 격렬히 흔들린다

길가 줄지어선 은사시 파르르 전율시키는

그의 독법에 휘몰이 되다

임진각 어귀에서 속도를 줄이자

책갈피 넘기는 속도 더뎌지더니

조용히 책을 덮고 구름 속 뛰어오른다

횡단보도 무시하는 가파른 속도에 짓눌려

내가 미처 넘겨보지도 못하고 던져놓은 책

한 꺼풀 한 꺼풀 넘겨보다

이슬 맺힌 문장에 감정 복받치는지

울컥 구름 속에 올라

가을 비 후두둑 뿌려

시야 아득하게 흐려놓는다

 

[미네르바] 2009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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