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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지독한 최면

고추잠자리 빙빙 맴도는

가을 운동장에 서면 자꾸만 돌고 싶어진다

트랙을 달리는 아이들

뜨거운 숨 턱에 닿아

기진맥진할 때까지 뒤 돌아보지 않듯

둥근 원에 들어서면

사로잡히는 무거운 의무감

빙빙 나를 돌게 만드는 운동장은

둥근 마법을 걸어 세탁기처럼 잡아 돌린다

원안에 들어서면 무조건 돌게 만드는 최면

누가 걸어놓은 건지

사각의 방에서 나를 끌어내어

둥근 걸 탓해볼 말미도 주지 않고 탈수시킨다

진이 빠져야 고단한 회귀를 멈추는 타성

지구끝 낯선 오지

구석구석까지 쉬지 않고

빙빙 돌리는 보이지 않는 검은 배후

초침과 초침의 간극에서 태어나는 순간부터

둥근 원에 숨겨진

마법 같은 원심력 탓할 겨를 없이

숨 턱에 닿도록 돌다 몽롱하게 떠올라 둥근 트랙을 내려본다

평생 이유도 모르고 정신없이 돌고 돌던 트랙

저 원안에서 한 생을 탈수시켰으나

향기로운 꿈을 꾸었고

평생 같이 도는 철없는 사랑을 만나고

아이를 얻은 둥근 마법의 띠

저절로 뛰어들어

결코 빠져 나오기 싫은

지독한 저 .....


2008 문학들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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