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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가난한 사랑

방충망에 매달려 따뜻한 방을 들여다보던 눈꽃들

팔에 힘이 빠지는지

하나 둘 이십층 아래 허방으로 떨어진다

떨어진 빈자리

철없이 날아와 붙는 눈발

임무교대 하듯

추락과 착지를 반복하며

가느다란 철사에 붙으려 바둥거린다

허공에 걸린 창틀 목숨 걸고 날아와 매달리는 꽃송이들

삭풍에 몸서리치는 철망에 

죽을 힘 다해 매달려

김 피어오르는 방 안의 풍경 넋놓는다

무수한 눈발들 어깨 밀리면서

아스라한 지상

온기 나는 방안 그리웠을까

천신만고 날아와 끝까지 손 놓치않으리라는 듯

유리창 속 단란한 식구들의 풍경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매달려 바라보다

마침내 스르르 허방으로 몸 던지는데

밥 한 술 허겁지겁 뜬 아버지

김 피어오르는 식탁 모여 앉은 어린 것들

흘깃 돌아볼 새도 없이

찬 바람 부는 거리 황급히 나선다

도시락 하나 달랑 들고 나서는 어깨 위로

눈송이들 하염없이 날아와

떨어지지 않으려 매달린다

 

2008 문학들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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