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히스테리 피해
살그머니 문을 빠져나와
막내와 어둠 저편 108호를 관찰한다
정육점 같은 불빛 속에서
내가 요리되었구나
파처럼 잘리고 마늘처럼 쪼개지고
양파처럼 벗겨지다가
미원 한 스푼 머리에 뒤집어쓴 채 양념되었구나
아내를 열 받게 하던
후덥지근한 저녁, 드디어 비 내린다
움푹 패인 웅덩이마다 빗물 고여
미사리 밤풍경 같다
비가 오면 마음도 눅눅해지는지
아내는 창틀에 턱을 괴고있다
잠시 전 스트레스 까맣게 잊고
모차르트를 걸어놓고 밖을 본다
어둠속 우리 보일 리 없지만
쉿 엄마에게 걸리면 우린 죽음이예요
막내가 입술에 손을 댄다
방충망 음표처럼 맺힌 빗방울 속으로
그녀, 금붕어처럼 헤엄쳐 들어간다
이제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네 엄마는 물고기자리로 떠났어
우린 저 물방울 중 하나
가만히 스며들어 잠들면 되는 거야
살금살금
시와상상 2008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