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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블랙데이 2

 

봄밤이었다

백열등 아래 누운 빈 방

오한이 나고 떨리는데도

진땀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아래층 둘둘치킨에서 통닭 튀기는 냄새

창틈으로 스며들어와

나를 후라이 하기 시작했다

천정이 빙빙 돌고 신열이 오르내렸다

벽에 걸린 사각의 거울 속에선

내가 노릿하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이들이 치킨 냄새를 맡고

어지럽게 창밑으로 달려오는 소리 아스레했다

치킨집 여자 가스불 점점 올리는지

모공마다 끈적한 땀 흘러내렸다

이를 악물고 매달리던

사람에 대한 기억 점점 혼미해졌다

앙상한 몸에 남은 기름기마저 다 빠져나가는지

땀이 흥건하게 내의를 적셨다

끈적한 눈물 볼을 타고 흘렀다

거울 속엔 냅킨 같은 이불에 쌓여

한 사내 아무렇게나 던져져 있었다

가물거리는 의식 속에서 

어디론가 배달되는 꿈을 꾸었다

오토바이에 실린 철가방같이

빙빙 도는 방에 누운 채

깜빡 잠이 들었을 뿐이었다

그의 식도를 타고

혈관까지 흘러들어가는 적혈구 하나

흐릿하게 보였다


현대시문학 2007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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