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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호시

페트병

 

청량리역으로 들어서며

실내등이 꺼져버렸다

에어컨 꺼져버린 전철

끈끈한 땀방울 가슴을 타고 흐른다

조금 남은 생수병을 입에 물고

마지막 한 방울을 들이켰다

여전히 입이 마르다

후줄근하게 팔 다리 풀렸다

순간, 덜컹거리는 전동차

휘청 몸의 중심을 놓치며

히스테릭하게 주무르던 페트병이 바닥에 굴렀다

빈 병은 순식간에 나를 탈출하여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자 차마밑으로 

잽싸게 들어가 버렸다

기차가 덜컹거릴 때 마다

빼꼼 얼굴을 내밀며

흘깃 눈치를 살피고선

나오려하질 않았다

끈끈하게 더듬어 쭈글쭈글해진 몸으로

달그락 달그락 뻔뻔하게 

세상모르고 조는 여자

가랑이 사이를 들랑거렸다


현대시문학 2007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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