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뮤다 SOS/ 전건호
기체가 심하게 요동치더니
자욱한 비바람을 뿌린다
손 놓쳤던 조종간을 잡는 순간
시공이 혼재된 중음(中陰)계가 열린다
소리와 빛이 입체화 되면서
지난 날 뿌린 말들이
소나기와 우박으로 떨어지는
마의 구간을 통과하면서
예측할 수 없는 기류에 휘말린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은
회고록을 읽는 것처럼 낯익었으나
건성으로 읽어 내리던 묵시록이
우울한 안개로 피어나고
반인반수의 구름이
환청처럼 몰려와 시야를 막는다
다만, 사랑한다 간헐적으로 고백했던 말들이
넝쿨장미가 되어
실낱 같은 항로의 등불이 되지만
자욱한 안개에
시계는 제로
이런 때 누군가
나를 사랑했었노란 말 한마디
떠올리기만 해도
구름 틈 북극성이 떠올라
무사히 귀환할 수 있으리라
- 웹진 『시인광장』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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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뮤다 삼각지대의 난기류는 거의 미스터리 수준이다. 지난 해 에어프랑스 여객기 한 대가 이 지역에서 실종된 것을 비롯하여 지금까지 크고 작은 비행사고가 있어왔다. 버뮤다, 푸에르토리코, 플로리다 마이애미, 이 세 지역의 연결 지점을 ‘버뮤다 트라이앵글’이라고 하는데, 돌풍과 허리케인이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항해하는 선박이나 항공기가 갑작스런 기상이변으로 추락하고 침몰하는 것을 두고 심지어는 외계인의 소행, UFO의 공격설도 있어 공상과학소설의 소재를 제공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믿을 수 없고 확인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 아무리 갑작스런 난기류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그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미스터리라 아니할 수 없다. 과학적으로는 이 지역에 형성된 열대성고기압이 예측불허의 강력한 허리케인 돌풍과 함께 소용돌이를 발생시켜 일어난 사고로 판단한다. 문제는 블랙홀로 빨려 들어간 것처럼 사라졌다는 대목에서 의문이 증폭되고 있으나, 이는 신비를 포장하기 위한 많은 거짓과 의도적인 왜곡, 과장 등이 포함되어 있음을 한 과학자가 밝힌 바 있다.
항행 중 이상기류에 의한 가벼운 롤링과 피칭 정도라면 ‘나를 사랑했었노란 말 한마디/ 떠올리기만 해도/ 구름 틈 북극성이 떠올라/ 무사히 귀환할 수 있으리’란 소박한 기도가 없더라도 사뿐히 구름위를 다시 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시공이 혼재된 중음(中陰)계가 열려’ ‘소리와 빛이 입체화’될 지경이면 고속엘리베이터가 급 하강하는 느낌이 길게 이어져 4차원의 구멍으로 빨려 들어가는듯한 상태일 텐데, 그렇다면 문제가 간단치 않다.
‘사랑한다 간헐적으로 고백했던 말들이/ 넝쿨장미가 되어/ 실낱같은 항로의 등불이’ 되기엔 너무나 긴박한 상황이다. 시간과 공간의 소멸점에서는 아무래도 지상에서의 사랑을 떠올리는 낭만 보다는 운명의 여신에게 SOS를 보내 그녀의 미소를 얻는 편이 훨씬 더 유효하지 싶다. 중음계든 해탈계든 실제로 그 문턱 앞이라면 모를까. 사랑이 아무 때나 밥 먹여주지 않고 어느 때나 사람을 살리지는 않는다. 하지만 큰 염려는 마시라. 비행기를 타고 가다 사망할 확률은 음식물을 먹다가 질식사할 확률 보다도 훨씬 낮다.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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