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점을 치다 / 전건호
당신은 전생에 상제궁의 선관이었어
어느 봄날이던가
춘흥을 못이긴 그대
후원에 스며들어
질펀하게 술 훔쳐먹고 객기부리며
화원에 꽃 마구 꺾어
그 죄값으로 인간세로 쫒겨왔어
선녀들 사는 후궁 넘본 죄로
부실한 정력을 받았다는 거라
그래도 제 버릇 못버리고
예쁜 꽃보면 아직도 못꺾어 안달한다는 거라
돈 많으면 또 방탕해져
술 여자 밝힐 게 뻔해
살림살이 곤곤하게 주셨다는 거라
그래도 품안 자식이었던지라
가끔은 하늘에 상제궁도 쳐다보라고
갈까마귀 같은 벗들에 가려
팔월대보름 달 한번 안쳐다볼까
적당히 외로운 사주 점지하셨다는 거라
그래서 이 낯선 지구에서
홀로 밤하늘 쳐다보며
술도 곤드레 못마시는 소인으로 태어나
이슬차 한 잔에 적당히 우울하고
접동새 우는 봄밤
미인도 속 춘화들에 속앓이하며 몽정만 하다
가슴 답답한 시나 쓰며 잠못이룬다는 거라
홀로 누워 몰아쉬는 한숨
매화꽃 비처럼 내리고
밤꽃향 물씬 화개골 진동시켜
수줍은 여자들 얼굴 붉힌다는 거라
꽃 한번 잘못 꺾은 죄로
하얗게 핀 찔레넝쿨에 갇혀
마흔해 지내고있다는 거라
찔레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