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름꽃 우화 / 전건호
삼백 년 전 아내를 만난다
칠남매를 낳았고
내 병수발에 허리 꼬부라졌던
여자와 마주앉아 백화차를 마신다
찻잔에 떠도는 백가지 꽃잎마다
삼백년전 세석평전의 바람이 인다
그녀가 찻잔에 시선을 떨구고 있음은
반사되는 지난 삼백 년 전의 하루를 쳐다보고 있음이라
주마등 같은 과거지사 앞에
잘 살아왔노란 말 한마디
서로 묻지 않기로 한다
수세미덩쿨 같은 자손들이
업둥이를 낳고 퍼뜨려
마름꽃처럼 세월의 강을 덮고
그 꽃잎으로 찻물을 우리면서
서로 손 내밀어 그러쥘 줄 모른다
찻물에 떠도는 꽃잎들이란
지난 시절 한 때
우리가 몸을 바꾸었던 꽃나무들이었음에
쌉쌀한 차향이 입술을 축일 때마다
넘어설 수 없는 어둠이 짙어질 뿐이니
한 번 엇갈린 인연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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