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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이 외 1 / 전건호

로렐라이

                                전 건호

 

 

깊고 푸른 눈동자 속

실족한 그림자들이 허우적거려요

 

얼마나 많은 별들이 수장되었을지 모를 바다

무모하게 뛰어 들어

백 년 동안 떠올랐다 가라앉을지라도

기어이 뛰어들고야 말았어요

 

풍랑과 회오리를 동반한 바람

종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 속

반인반수의 파도가 혼을 앗아버리는

해류 속 짙어가는 어둠이

치명적인 아가미를 벌리는 데요

 

턱밑 잘름거리는 너울이란

실족한 이들로 넘쳐나는 거품

아무도 무사히 발길 돌릴 수 없게 하는 파도의 비밀

 

하얗게 물음표를 던지는 파랑에 걸터앉아 질문을 던져요

 

당신은 얼마나 슬픈 벼랑인지

 

발목을 담근 채 글썽이는 눈물방울 속으로

당신에게 혼을 빼앗긴 별들이 투신하는 어스름

 

몇 생을 다시 태어나 노를 저어도

결코 건널 수 없는

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게 하는

 

 

 

 

 

포로를 꿈꾸다

 

 

 

식사를 하고 나설 때마다

신발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하이힐

 

불온한 결핍이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우연치고는 필연 같은

말 한번 걸지 않는, 은밀한

고압전류 신경세포를 관통한다

 

밥을 먹는 동안

두 신발이 입 맞추며 흘린 농담에

신발장은 무개중심으로부터 기울어진다

 

정분 난 신발들의 도화살이라

얼굴도 보지 못한 구두의 주인공이

이웃집 커튼 사이에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치명적인 음모에 빠져든 걸까

 

몇 번 오가는 길에 마주쳤을까

물결치는 인파속

검은 안경에 바바리코트 깃을 세운 눈초리가

도도한 오감의 벽을 넘나드는

전율스런 도청에 몸을 부르르 떤다

 

나는 한 켤레의 낡은 구두

 

구두끈을 조이는 소름 돋는 정오

통정하는 구두에 끌려 다니며

먹어도 먹어도

허기 가시지 않는

 

2012 시와정신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