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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만의 폭설에 길을 잃다/전건호

서울행 열차가

부산행 열차와 스치는 순간

반대편 열차의 차창에서 흘러나온

희미한 실루엣 속으로 뛰어든다

소실점을 향하는

스물 네 칸의 시간을 매단 기차가

전속력으로 망막을 향해 돌진한다

바늘구멍 속 빛의 소용돌이에서

삼백 육십 다섯 마리의 박쥐가

텅 빈 빛에 놀라 날아오른다

거꾸로 매달렸던 사물들이

빛 한 줄기에 빨려들자

질겅거리던 껌에 울컥 울음이 박혔다

그를 찾지 못하고

어깨 들썩이는 나를

덜컹대는 소음들이 몰려들어 다독였으나

울음은 급행열차를 탔다

숨을 거두는 별들이 뿌리는

눈물의 파편이 차창에 흩날렸다

중음계를 떠돌던 유령들이

눈물에 몸을 감추고

나를 연민하는 동안

당신에게 가는 길이

폭설에 덮였다

 

2010 리토피아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