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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묘지/전건호

단풍나무 아래 세워둔 차가 밤새 무덤으로 변했다

단풍에 덮인

불같이 살다간 어제의 내 묘지

저 집을 짊어지고

비탈길 오르내리던 나는 달팽이의 유령인가

난바다를 표류하다

밤새 무덤이 되어버린 집앞에 선

달팽이가 되어

꽃잎 단장한 무덤을 어루만진다

꿈에서 깨어보니

집이란 게 본시 나를 묻어야할 무덤

어제 묻혔던 봉분을 열자 풀썩 내려앉는 공기

덥수룩한 얼굴 창백하다

웃음 몇 조각 붙어있는 입가에

거친 숨소리 이마에 고랑을 판다

교묘하게 뿌리내린 머리카락

헝클어져 엉킨다

기도를 막는 미완성의 시어들

화사처럼 목을 휘감는다

미라에 몸을 포개자 저절로 걸리는 시동

달팽이 걸음으로 달리는 차창에

새떼같이 날아드는 단풍

멈추는 순간

무덤이 되어버릴 집을 짊어지고

안개 속 질주를 한다

 

 

  2010 열린시학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