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전 건호

 

 

어제는 명동길

 

밤늦도록 쏘다니며 헤픈 눈빛 뿌렸어

 

철없는 인형들 마음 흔들다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지

 

곤하게 잠이 들어 꿈을 꾸다가

 

인형 하나 꼬드겨 살을 섞고 살림 차렸어

 

자명종에 화들짝 놀라

 

이른 새벽 명동길 들어서는데

 

옷가게 긴 머리 인형 보이지않는 거야

 

유윳빛 인형 팔 꺾인 채 넘어져 있고

 

다리 꺾이고 두 팔 잘린 채

 

고개 돌려 외면하는 거야

 

내 눈빛에 흔들려

 

간 밤 유리벽 두드리다 상한 인형들

 

초점 없이 골목길 내다보는 거야

 

헤프게 뿌리던 눈빛 까맣게 잊고

 

한 여인네와 눈 맞추는 동안

 

저들은 나를 찾아

 

낯선 거리에서 길을 잃고

 

청춘이 꺾여 버린 거야

 

미련도 없다는 듯이

 

초점 없는 눈망울들

 

거리만 내다볼 뿐

 

아는 체도 않는 거야

 

 

 

허물

 

 

머물다 떠난 자리

 

발자국 하나 남기지 않고

 

홀연히 떠나왔는데

 

석 달 열흘 대숲 수런거린다

 

무심코 섰던 자리엔

 

눈치만 보던 억새

 

뿌리 뻗지 못하고 멈칫거리고

 

흔적 쓸어내느라 흙먼지 분분하다

 

문득 떠난 자리

 

앙상한 가지마다

 

참았던 꽃망울 터진다

 

풀벌레 분분하게 울다

 

늦가을 허물만 남기고 떠나가는데

 

단풍나무 불길 치솟는다

 

무심히 스쳐 지나던

 

그 자리 설 때마다

 

나는 홀린 듯 못 박히고

 

칸나꽃 붉게 날세운다

 

바람 어수선하다

 

 

2009 수주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