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열차에서 내리자
오래된 연인을 만난 듯
술 취한 금발의 여자 손짓한다
그녀 손에 이끌려
보드카를 주거니 받거니
손짓발짓 뜨거워지다
술잔에 아쉬움 채워놓고 일어서는데
씨유레이터, 눈물 글썽이며
금발 여자 손 흔드는 게 아닌가
기차는 육중한 몸 덜컹거리며
매달리는 바람을 떼어내느라
필사적으로 경적을 울려댄다
순간, 그녀를 바라보던 눈길
쏜살같이 창밖으로 길을 낸다
그렇게 바이칼을 떠나온 후
눈만 감으면 물결 일렁이는 소리가 난다
해조음 따라 흘러가면
다시 이국의 시골 역
낯선 여인의 손에 이끌려
떠도는 사내를 향해
시베리아열차가 경적을 울려댄다
2009 대전시인협회 특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