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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사라졌다

머쓱한 전봇대의 목이라도 부러진 걸까

등 뒤에서 쿵하고 땅을 흔드는 소리에

길 건너다 말고 고개 돌렸다

비스듬히 뒤따르던 그림자 하나

건널목 미처 건너지 못하고 트럭에 깔렷다

박살난 유리처럼 깨져 아스팔트에 음각되었다

앞뒤 안가리고 서둘러댄 게 화근이다

밥 한 술 못 얻어먹으면서도

보디가드처럼 묵묵하던 그였는데

요란한 넥타이 빛깔만큼 화려했던 날들

사랑의 열기로 뜨거웠던 불면의 기억들

이젠 낡고 희미해졌지만

변함없이 제 주인만 믿고 

막다른 골목까지 희멀건 키 구부려 따라오던 그가

작두 아래 깔리는 주인의 위급함

차마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인도로 등 떠밀어주고 대신 깔려버렸다

구급차 싸이렌 울리며 스쳐지나고

행인들 동정도 없이 흘러간다

놀란 가슴 쓸어내리며

일말의 가책도 없이 돌아서다

뒷덜미 이상해 고개 돌린다

비척비척 따라오는 질긴 그림자

지금쯤 먼 길 갔거니 했더니

온 몸의 상처 아랑곳 않고 묵묵히

땅거미 지는 언덕 절룩거리며 따라온다

고갯길 넘어서자 희미한 가로등 아래

등 구부린 채 꽁무니 안간힘으로 밀어준다

가을을 문턱에 둔 초저녘까지

비지땀 흘리는 그가 안쓰러워

희미한 가로등 아래 잠시 멈추어서 돌아본다

핼쑥한 낯빛 헐떡이던 그가

인적 없는 캄캄한 고갯길

끝내 보이지 않는다

 

 

2008 시현실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