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
별빛이 시간을 관통하는 밤 / 전건호
명인사업단대표
2024. 5. 3. 22:41
별빛이 시간을 관통하는 밤 / 전건호
검은 커튼을 걷자
이미 숨을 거둔 행성에서 탈출한 별빛이 허겁지겁 뛰어 들었어
출렁이는 침묵에 가위눌려
오종종 내가 읽던 활자를 배회하며
상심 가득 푸른 멍이 든 수화를 하는 거야
목숨 걸고 날아온 시공에서 엇갈렸던 별들과
사라진 별에서 나만 내려 보다
숨 거두던 이의 절박을 온몸으로 말했어
덜컹 내려앉는 심장박동
침묵은 방바닥을 구르고 유리창에 덜컹거렸어
맨발로 달려온 바람이 손을 내밀었지만
심약한 별빛은 후둘거리는 다리를 가누지 못했어
캄캄한 우주를 날아오는 동안
등불 내걸고 손짓하던 행성들을 끝내 외면하고
내 품에 달려와 안기는 별빛
활자들은 허리 굽히고 다독였지만
가쁘게 몰아쉬는 숨결에
벽지 속 나리 왈칵 꽃망울 터뜨렸어
이 별에서 만난 꽃들이란
백년마다 바뀌는 시간의 변곡점에서
나를 찾아 지구별로 뛰어든 유성우
눈썹을 스치는 바람에 안간힘으로 몸 가누던 별빛은
방금 전 눈 맞추던 형용사앞에 풀썩 몸을 허물었어
한 점 파르르 떠는 별빛과
눈을 마주치는 순간의 섬광에 놀란 별들이
내일로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해법 없는 슬픔을 밤새워 조명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