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라에 갇히다 외 1 / 전 건호
꽃보라에 갇히다
전 건호
벚꽃 툭툭 터지는 남산길
들뜬 마음 비누방울처럼 떠다닌다
몸은 신호등에 잡혀있는데
눈망울은 펑펑 터지는 꽃송이를 포릉거린다
전조등 질주하는 대로를 건너
철없이 언덕으로 내달릴 때
가슴 까맣게 발 구르며 소리친다
얘야, 조심해라
꽃이 너를 절벽으로 유인할 지도 모른다
너무 멀리 달리다보면 길을 잃을 수도 있단다
애타게 눈길 한 곳에 붙잡아두려 해도
들은 척 않고 포릉포릉 나른하게 날아다닌다
얘야, 밤이 깊었구나, 그만 돌아가야지
갈길 막막하기만 한데
자꾸만 꽃보라 속으로 달아나는 철부지에 이끌려 꽃사태 속을 헤맨다
졸려 가물거리는 방울새
간신히 붙잡아 다독이며 돌아서는
꽃보라에 얼어붙은 소월길
하얗게 멀미나는 꽃사태에 발걸음 휘청거린다
중음계에서 만난 여자
고목 아래 코를 고는데
머리칼이 나를 배반하고 뿌리를 내려요
산발한 꿈속 선회하는 하루살이와 주파수를 맞추는데
귀신매미 허공에 파놓은 동굴 가득
허기지게 밀려드는 바람
머리칼은 지층 속으로 길을 열어요
깊이를 알 수 없는 최면에
실뿌리들은 신라로 뻗어만 가고
벼랑을 날아오르는 하루살이
다보탑을 넘나드는 단조가 돼요
기하급수적으로 풀려나는 울음
천년의 잠을 가득 채우는
질긴 바람 한 올을 따라 걷다보면
멀리 시간의 소실점 첨성대에 매달린 거미줄에
어름산이 아슬아슬 줄을 타다
탄성을 지르는 여인네들
깊은 눈망울 속으로 아스레 추락하는 데요
무량수의 빛의 간극을 지나
후생의 나를 잉태할 골짜기로 빗금을 긋는 데요
출렁이는 양수는 안압지에 범람을 해요
환호하는 저 여인들 중 누구의 자궁에서
긴 쉼표를 찍을 수 있을까요
2011 딩아돌하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