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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거족의 초대장 외 1 / 전건호

명인사업단대표 2011. 12. 28. 15:25

 

穴居族의 초대장

                                     전 건호

 

 

여기는 어둠이 지배하는 나라

풀 나무는 끼리끼리 꽃 피우다 지고

알 수 없는 은어로 참새들은 재잘돼요

 

고개 돌린 채 키들거리는 꽃향기

신화 속 지하세계를 찾아 굴을 파는데요

 

클릭 클릭

 

어둠의 단층을 들출 때마다

조금 씩 풀려가는 난수표

뒷골목 건달이 은자가 되고

처음 만난 이들 끼리 일촌을 맺는 세상

 

지층 속에 꼬인 회로를 통과하면

절름발이도 이두박근 전사가 되고

주근깨는 신데렐라로 변신하는데요

 

환대받지 못하던 꽃들도

성형을 하고 몸을 꼬는 세상

 

어느 대문을 밀쳐도, 접속

눈빛 하나에 순정을 바치고

처음 만나 뜨거워져도 허물이 되지않는 나라

 

은밀하게 초대장을 보내요

나의 영토로 놀러오지 않을래요

 

 

 

 

 

 

이상한 꿈 속의 가릉빈가

 

 

 

삶은 계란에서 병아리가 부화되었어

검정비닐봉지에서 비둘기가 날아오르고

주렁주렁 붉은 감들은 포르르 날개를 달았어

 

노란 은행잎은 나비가 되었어

 

쓰다버린 파지는 까마귀가 되고

배신에 울던 여인은 천사가 되었지

 

애벌레처럼 꼬물꼬물 걷는 세상은

둥지처럼 둥글고

침 뱉고 흘겨보던 것들은 날개가 돋는 거야

 

눈길 받지 못한 것들만

백년을 바스락 시들다 바닥에 구르고

부화하지 못한 알들은 화석이 되었어

나를 기다리는 것들을 찾아 꼬물꼬물 지상을 걷다보면

눈길을 준다는 건 수혈을 하는 것

발자국 하나에 깃털 하나

수미산을 한 바퀴 돌 때마다 한 뼘씩 날개가 자랐지

 

무정란 속에 갇혀 껍질 두드려대는

가여운 것들을 향해 등을 떠미는 바람에 밀려

유곽의 붉은 창 아래 엎드려 깜빡 꿈을 꾸는데

꿈에도 잊을 수 없던 그대 눈과 마주친 거야

 

밤의 껍질 와르르 무너지면서 은빛 날개가 돋았어

그대를 따라 날아오른 티끌 자욱한 세상

눈길 스칠 때마다 달맞이꽃 피어났어

 

 

2011 다시올문학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