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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좌를 타다 / 전건호
명인사업단대표
2011. 3. 24. 09:10
거문고좌를 타다
전건호
전생과 내생을 가르는 강둑에 앉아
궁상각치우 거문고 현을 뜯는다
지난 생 살 섞던 이들
물고기가 되어 내쉬는 한숨에 풍랑이 친다
바람을 타고 수면에 떠도는 가락들
눈시울 가득 사무쳐
그리울수록 행성이 되고
짝을 찾지 못한 눈길 혹성이 돤다
그대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띄우고
흔적없이 사라질 떠돌이별을 정간보에 모으니
현에서 튕겨 나온 가락들이
별자리가 되어 항로를 연다
현을 뜯을 때마다 소용돌이치는 강물
닻도 없이 떠도는 배는
손금에서 발원한 은하를 굽이쳐
그대와 나의 전생을 잇는
나루터를 향해 닻을 올린다
미루나무에서 뿌린 음표들이
수면을 떠도는 가락과 만나
그대 떠난 서해로 길을 연다
청맹과니
방금 바른 연고를 찾으며 허둥대는데
측은하게 바라보던 벗이
찾지 말고 기다리면
제 발로 찾아 오리란다
못미더우면 줄을 매달아 관리하란다
물건도 사생활이 있다는 말씀
듣고 보니 그럴 듯한데
성질 급한 내가 마냥 기다릴 수도 없고
모든 것에 줄을 매달자니
도대체 몇 개의 끈을 관리해야할까
사랑에 이름표를 붙여야 한다면
명주실타래를 풀어야 할까
마음 준 사람, 머무르고 싶었던 풍경
끈 매달고 이름표를 달자면
천수천안이어도 모자랄 일
법당 하나 간수못하고 동동거리다 보면
날아가던 콩새가 웃는다
2011 다시올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