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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씨를 먹는 여자/전건호

명인사업단대표 2009. 12. 4. 09:01

아내는 포도를 씨앗 채 삼킨다

삼킨 씨앗들이

기름진 자궁에서 싹을 틔워

마음의 넝쿨로 뻗어나는지

오지랖 포도넝쿨 같다

머문 곳마다 포도송이 같은 입담을 매단다

단내를 맡고 벌떼가 모여 들 듯

동네 아줌마들이 꼬인다

동분서주, 약속이 넝쿨처럼 꼬여 어쩔 줄 모른다

왕성한 수화로 나를 휘감을 때면

그녀 푸른 입담에 칭칭 감긴 수수깡 같다

관절마다 푸른 싹이 돋아

나를 온통 파랗게 휘감아

주렁주렁 포도알 같은 주문을 걸어놓는다

비옥하기만 한 아내의 속에서 돋아난 푸른 싹

내 마음 뻥 뚫린 구멍까지 파고들어 덮어버린다

주렁주렁 매달린 송이에

휘어지고 부러져도

그녀의 잔소리 쉴새없이

온 몸을 휘감아 오를 땐

그녀를 떠받치는

지주목이 된 거 같다

 

2009 시와세계 겨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