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건호시

살금살금

명인사업단대표 2008. 4. 3. 15:59
 

아내의 히스테리 피해

살그머니 문을 빠져나와

막내와 어둠 저편 108호를 관찰한다

정육점 같은 불빛 속에서

내가 요리되었구나

파처럼 잘리고 마늘처럼 쪼개지고

양파처럼 벗겨지다가

미원 한 스푼 머리에 뒤집어쓴 채 양념되었구나

아내를 열 받게 하던

후덥지근한 저녁, 드디어 비 내린다

움푹 패인 웅덩이마다 빗물 고여

미사리 밤풍경 같다

비가 오면 마음도 눅눅해지는지

아내는 창틀에 턱을 괴고있다

잠시 전 스트레스 까맣게 잊고

모차르트를 걸어놓고 밖을 본다

어둠속 우리 보일 리 없지만

쉿 엄마에게 걸리면 우린 죽음이예요

막내가 입술에 손을 댄다

방충망 음표처럼 맺힌 빗방울 속으로

그녀, 금붕어처럼 헤엄쳐 들어간다

이제 자유로울 수 있겠구나

네 엄마는 물고기자리로 떠났어

우린 저 물방울 중 하나

가만히 스며들어 잠들면 되는 거야

살금살금

 

시와상상 2008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