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詩시집서평 ■
일상적 생활 세계의 소묘와 비극적 통찰
-전건호 시집,『 변압기』(2011, 북인)
김 홍 진 (문학평론가 · 한남대 교수)
자본주의의 발전에 의한 도시적 삶의 양적 팽창은 현대인의 삶을 평균
적이며 균일적 일상성이라는 질적 변화를 초래하였다. 그것은 현대적 삶
의 근본적 특징이다. 일상성은 세속적 삶의 속악성과 반복성, 범속성과 타
율성으로 인해 미적 범주에서 부정되었던 개념이다. 일상의 영역은 무의
미함과 권태, 반복과 통속이 압도하는 공간이다. 대개의 경우 시인들도 일
반적인 보통 사람들처럼 이러한 일상의 세속 세계에서 삶을 꾸리고 사는
자이다. 그러나 변화된 세계에서 시인이 이들과 다른 점은 범속하고 세속
적인 일상에 매몰되지 않고 일상에 대한 미시적 관찰과 반성을 통해 삶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한다는 것에 있다.
생활 세계의 세부로서 일상의 영역을 문제 삼아 이야기하는 것은 일상
을 수락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 세계의 욕망과 운명의 표정을 들여다
보고, 미시적 관찰과 반성을 통해 삶의 진정성이란 무엇인가를 성찰해보
자는 것이다. 일상의 반복성과 균질성은 제도적 억압과 삶의 비극성을 은
밀하게 은폐한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보다도 경계해야 할 것은 일상성에
의 매몰이다. 현실원칙의 억압과 삶의 비극적 운명은 일상 속에 깊숙이 감
추어져 있다. 그러나 일상의 영역과 구조는 쉽게 전복되거나 바뀔 수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우리는 그 일상의 영역 안에서 성찰적 견딤과 자각을 통
해서 그 안으로부터의 어떤 가능성, 본래적 삶의 진정성을 탐문해야 할 뿐
이다. 이러한 명제는 어쩌면 세속적 일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시인에게 주
어진 필연적 운명이 아닌가 싶다.
이와 같은 명제가 수락 가능하다면 생활 세계의 일상, 저 비속하고 세속
적 삶에 대한 시인의 성찰은 남루한 삶의 처연하고 비극적 운명을 확인하
고 그것과 담담히 마주하여 전면적 대결을 수행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
기 때문에 그 싸움은 허무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왜냐하면 일상은 결코 무
너뜨리기 힘든 견고한 성채처럼 굳건하기 때문이다. 또한 일상의 세속적
현실에 대한 반성과 성찰, 혹은 거부와 저항은 그것이 은폐한 삶의 비극적
운명과 구조를 드러내는 것에서부터 출발하기 때문이다. 삶과 현실 세계
에 대한 비극적 인식의 매력은 현실원칙의 강고한 억압성과 은폐성을 폭
로하는 데 있다. 그것은 또한 그 싸움이 패배할 싸움일지도 모르지만 포기
하지 않고 싸움의 과정에서 본래적인 삶의 의미를 길어 올리려 고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의지적이며 전략적 행위이기도 하다.
현대의 시인들은 일상의 영역에 은폐된 억압성과 비극성을 폭로하고 그
안에서 견디고 성찰하면서 삶의 진정성을 끝없이 탐문하는 과정에 있는
자의 운명을 지니고 있다. 전건호의 첫 시집『변압기』는 불편하게도 일상
적 삶의 비극성을 들춰내고, 그것과 맞서면서 삶의 진정성을 탐문해 나가
는 과정에 위치해 있다. 이를테면 “환상통에 미끄러지듯 청계천을 걷다
보면 / 파랑에 휩쓸리는 인어 같다 / 무표정하게 내려다보는 / 쇼윈도 마
네킹들 / 꿈에 부푼 미니스커트 위성처럼 휙휙 날아다니”는 환상통 같은
세속적 현실에서 주어진 세계를 반성적으로 성찰하고 삶의 진정성을 찾아
나선 자가 시인이다. 전건호의 시집은 이러한 일상 생활 세계의 세부에 천
착하면서 삶의 비극성을 드러내는 역동적인 과정을 보여준다. 전건호의
시에서 우선 주목할 점은 일상적 삶의 영역이 갇힘의 이미지로 드러난다
는 것이다.
원반 같은 운동장 이 악물고 뱅뱅 돌다가 숨 가빠 그만 멈추려는데 두
다리가 제멋대로 뱅글거리는 거라 힘들어 죽겠는데 멈춰지지 않는 거라 내
가 달리는 거라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운동장이 멋대로 나를 굴리는 거라
공깃돌처럼 톡톡 튕기는 거라 하도 기막히고 어이없어 가쁜 숨 할딱이며
생각해보니 여기까지 온 게 내 의지인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거
라 바람이 이리저리 나를 이끌었고 길들이 나를 둘둘 말아 꾸역꾸역 소화
시켰던 거라 알지 못하는 힘이 나를 원반 속에 밀어 넣은 거라 평생 쳇바퀴
돌고 돌면서도 꿈에도 눈치채지 못한 거라 이제야 그걸 깨닫고 트랙을 뱅
뱅거리면서 담장 밖 흘겨보며 씩씩거리는데도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멈출
수가 없는 거라
-「 거라」전문
인용 시는 “쳇바퀴 속 다람쥐처럼” 뱅뱅 돌고 돌며 살아온 삶에 대한 성
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화자의 시선은 ‘나’의 실존적 운명 내지는 삶의
현재적 구조를 응시하고 있다. 그러한 시선의 응시는 세계 내 존재이기 때
문에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어떤 커다란 현실 세계의 “알지 못하는” 음
험한 힘을 겨냥한다. 화자의 응시는 결국 현실적 삶의 구조가 은폐한 억압
성과 타율성을 인식하고 반성적으로 깨닫는 것이다. “여기까지 온 게 내
의지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만도 아닌 거라”는 화자의 반성적 깨달음은
그러나 삶의 비극성으로부터, 화자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담장 밖”으로
탈출할 수 있는 길까지 제공해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화자는 그 비극
적 운명을 다소 냉소적이며 풍자적으로 형상화한다. 삶은 “알지 못하는”
타율적 힘에 의해 “원반 속에 밀어 넣어진” 것이며, “내가 달리는 거라 생
각했는데 알고 보니 운동장이 멋대로 나를 굴리는” 일 뿐이다. 나의 주체
적 의지는 사라지고 나는 다만 어떤 커다란 힘에 의해 타율적으로 조종되
는 존재일 뿐이다.
우리는 누구나 그렇고 그런 새로울 것 없는 일상적 삶을 살아간다. 대개
의 경우 길게는 삶의 일반적 패턴이 그러하며 짧게는 하루의 일상이 그러
하다. 하루아침에 현실적 세계와 지금 여기의 삶이 전복될 확률적 가능성
은 희박하며, 오늘은 어제와 다르며 내일은 오늘보다 새로울 것이라는 기
대 지평은 결코 열리지 않을 것이다. 하이데거는 일상의 평균율 속에서 자
기 자신은 없고 타자의 의향이 현존재의 모든 존재 가능성을 임의대로 조
정하는 경우를 존재 가능성의 균등화라 했다. 이때 나의 고유한 정체성은
사라지고 알 수 없는 타자가 내 안을 점유하고는 나를 제멋대로 부린다.
인용 시「거라」는 이러한 측면을 적절히 반영한다. 환언하면 화자는 “내
의지인 줄 알았”지만 사실은 “알지 못하는 힘”에 의해 담장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트랙을 뱅뱅” 도는 삶을 냉소적으로 그리고 있다. 담장 안
에 갇혀 주어진 트랙을 뱅뱅 도는 존재 가능성의 균등화는 획일성 혹은 균
일성으로서 일상적 삶의 존재방식을 규정한다. 우리의 운명은 그 함정, 그
담장 안의 트랙에서 아무리 “파들대”도 “절대 벗어날 수 없”는 “모래무지”
같은 신세이다. 따라서 인용 시는 현실원칙에 의해 규제되는 일상은 삶의
존재 방식을 타율적이고 억압적으로 규정한다는 점을 적절히 지시하는 것
처럼 보인다.
언제부터 엉켜 잠든 건지 몰라요 밖으로 나가는 순간만 초조하게 기다리
는데요 인적 끊긴 거리 창백한 유령처럼 서로 등 돌리고 곁눈질하다 하얀
손 어른거리기만 해도 심장이 얼어붙을 거 같아요 파리한 가로등 불빛에도
신데렐라가 된 듯 외로운 비둘기의 날갯짓에도 자꾸 차디찬 손을 놓쳐버려
요 낙진처럼 가라앉는 한숨 섞인 시선들 눈물 글썽이며 서로 어깨 다독거
려주는데요 새벽 두 시 불 꺼진 미로를 떠도는 바람이 마른 눈물마저 지우
고 가네요 멀리서 찻소리만 들려도 까맣게 타버릴 마음이에요 오늘밤은 부
디 당신 머리맡에 잠들 수 있게 제발 여기서 건져 주세요
-「 인형뽑기」전문
인용 시의 시적 대상은 상점 거리의 귀퉁이에 놓여 있는 인형 뽑기 상자
속에 갇힌 인형이다. “밖으로 나가는 순간만 초조하게 기다리는”상자 속
인형은 화자 자신이라는 개인적 실존의 등가인 동시에 인간의 보편적 실
존처럼보인다.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창백한 유령”, “ 파리한 가로등”,
“외로운 비둘기”,“ 차디찬 손”,“ 한숨 섞인 시선”,“ 불 꺼진 미로”,“ 마른
눈물” 등등과 같은 냉정하고 부정적 표현들에 의해 갇힌 자의 불안과 공
포를 환기한다. 이것은 상자 속에 갇힌 실존에 대한 관찰일 뿐만 아니라,
그 갇힌 공간과 실존적 양태에 대한 시인의 관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시인
은 상자 속 인형을 시적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 인형’은 도시의 길거리 인
형뽑기 상자 속에서 “나가는 순간만 초조하게 기다리는” 갇힌 생활을 이
어왔다. 상자는 물론 개인적 실존 혹은 사회적 실존으로 등가된 ‘인형’이
라는 존재의 구속된 삶에 대한 시적 상관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 머
리맡에 잠들 수 있게 제발 여기서 건져 주세요”라고 애원하는 고백의 구
절은 갇힌 삶의 실존적 비극성에 대한 쓸쓸한 자기 확인이다.
전건호의 시에서 이와 같은 삶의 구속성은 “콘크리트 틈 뿌리 내리고/
백 년을 기어” 오르는 담쟁이(「영혼의 집」)이나 수세미(「수세미에 접붙이
다」), “ 밥이 곧 무덤인” 어항의 감옥(「물의감옥」) 등의 이미지로 표현되기
도 한다. 그 이미지들은 삶의 구속성과 비극성을 드러내준다. 폐쇄된 공간
에 갇힌 이러한 삶의 구속성과 비극성은 “블랙박스 속에/ 선명하게 기록”
된 생애(「 검침원」)나 “車와 包에 끼인”(「 팔괘진에 갇히다」) 갇힌 존재로 드
러나며, 갇힌 담장을 힘겹게 기어오르는 ‘담쟁이’나 ‘나팔꽃’이나 ‘수세
미’ 같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막막한 벽을 기어오르는 식물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이렇게 자신의 실존을 등가한 시적 상관물들은 “난파당한 배
(船)처럼/ 담벼락에 정박해 비틀거리”(「새벽 귀가」)거나 “바람에 찢긴 파
란 손바닥/ 가늘게 흔들며”(「 영혼의 집」) 담벼락을 기어오르는 것처럼 비
극적으로 그려진다. 이 또한 구속된 삶의 실존적 비극성에 대한 자기 확인
이며 자기 성찰이라 할 수 있겠다.
눈만 뜨면 벌어지는 對局
이름 없는 卒이 되어
얼마나 많은 루비콘강 건너왔던가
알집 같은 아파트 나서면
날마다 급변하는 陣勢
오늘은 이리 밀리고
어제는 저리 밀렸던가
우왕좌왕 밀려다니며
적진의 卒몇이나 베었던가
차와 포에 낀 이름 없는 卒이 되어
던져지길 몇 번인가
-「 묘수를 찾아서2」중에서
된장과 깻묵을 넣으세요
다음엔 길을 만들어 유인하세요
식욕을 자극하는 냄세가 후각을 자극하겠죠
밥이 곧 무덤인,
정작 모래무지만 그것을 모르죠
-「 물의 감옥」중에서
전건호의 시에서 일상적 삶은 “날마다 급변하는 陣勢” 속에서 “이리 밀
리고” “저리 밀”리며 “루비콘강을 건너”는 일이거나 “밥이 곧 무덤인” 줄
모르고 “물의 감옥 못 들어와 안달하는” 탐식의 모래무지와 다름이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삶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세계라는 원반에 “이름
없는 卒이 되어” 함부로 던져진 것에 다름 아니며, “처음부터 함정”인 그
원반 위에서 떡밥을 탐하다 종국에는 벗어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것
과 유사한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나는/ 오늘도 잘못 배달되는 것 같다”
「( 문자 메시지」)고 고백한다. 이러한 이미지들은 삶의 정처 없음과 비극성
을 그대로 드러낸다. 일상적 삶의 현실을, 혹은 그 속에서 그렇게 살아오
고 살아가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한다는 것, 그것은 별로 특별한 것이 아니
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표현들 속에 삶의 비애와 그것을 넘어서 있는 삶
의 진정성에 대한 갈구가 짙게 배어 있다는 것이다.
현실원칙에 의해 강제된 세속적 삶의 균일성과 타율성은 구체적 생활
세계의 일상을 낯익고 습관화된 반복으로 내몬다. 또한 일상의 영역은 세
속적 욕망들,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 몸집에 제가 깔려 죽는 줄도 모
르고” “꾸역꾸역 몸집을 불리는 데만 열중”(「 멸족의 후예」)하는 멸족을 앞
둔 비대한 공룡의 폭식 같은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시인에게 비춰지는 일
상적 삶의 생활 세계는 “모눈종이 같은/ 보도블록에 박혀 있는 집/ 문 나
서는 순간” “반상의 도시를 헤”매며(「묘수를 찾아서」) “ 일진일퇴 거듭”
(「 팔괘진에 갇히다」)하다가 “성냥갑 집으로 돌아가/ 고단한 몸 눕”(「묘수
를 찾아서 2」)히는 것과 같이 고단하고 획일화된 것이다. 시인에게 일상의
규율은 통속으로 가득하고 자동적으로 반복되기 때문에 무의식적이고 비
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생활 세계의 일상은 삶의 세목을 이루는
구체적인 일면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말하자면 생활 세계
의 세부로서 일상성은 우리의 삶과 존재가 현현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삶
의 구체성과 세목을 이루는 요건이기도 하다. 앙리 르페브르의 통찰처럼
일상성은 현대성의 무의식과 삶의 현실적 조건에 대한 인식과 비판적 성
찰을 제공해주는 주요한 준거틀이다. 전건호의 시는 이러한 현대적 일상
인의 삶의 양태를 비극적으로 드러내는 데 공을 들이며, 그 안에서 삶의
진솔한 진정성을 찾는다. 삶에 대한 이러한 비극적 인식 때문에 그의 시는
허무주의를 스치고 지나가는 듯하지만, 전건호 시의 허무나 비극적 인식
은 생활 세계의 아픔이나 실제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
고 견디는 것이다.
아버지 누웠던 옛집 마루에 오늘은 내가 객이 되어 눕는다 그리운 수묵
화 한 폭이 펼쳐진다 강물에 발을 담그고 낚싯줄 드리운 아버지가 보인다
물총새 날아들어 굴참나무 숲은 점점 무성해지고 내가 누운 마루까지 끌고
온 그늘이 담백하다 아버지는 여전히 스무 살 청년이었으나 나는 서른이
되고 마흔이 되고 수묵화 속 고목처럼 시들어간다 마당을 덮은 칡넝쿨이
그려내는 그리운 수묵화 한 폭 명자꽃 지는가 싶으면 배롱꽃 가득하고 또
눈이 내렸다 저녁 어스름에 눈 떠보면 또 다시 텅 빈 마루 헝겊처럼 핀 나
팔꽃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혀 있다
-「 옛집 수묵화」전문
인용 시에서 화자는 옛집 마루에 올라 원형적 풍경을 상상하고는 “서른
이 되고 마흔이 되고 수묵화 속 고목처럼 시들어”가는 자신을 응시한다.
그 응시는 젊음의 소실에 대한 회한으로 화자를 이끄는데, “텅 빈 마루 헝
겊처럼 핀 나팔꽃 눈망울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것처럼 슬픈 것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화자가 막막한 세월, 시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죽어도
몇번은 죽었어야” (「 개구리에게배우다」) 하는 시간을 견뎌와 이제는 쓸쓸
한 중년의 자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회한은 상실과 덧없음에서 기
인하는 것이며, 그 회한의 자리에 새로운 자기 인식의 계기를 주는 것은
시간의 소멸에 대한 긍정에서 오는 것이다. 그것은 곧 “무조건 영역을 넓
히는 게 아니”(「담쟁이」)라 “잃어버린다는 것은/ 무겁게 짓누르던 잡념이
휘발”되고 결국은 “..을 향해 달릴수록/ 무념의 경지에 달하는”(「지천명
2」) 세계, 즉 고단한 삶의 남루가 모두 원형적 긍정으로 용해되는 ‘담백’
한 세계이다
전건호의 시는 결핍으로 가득 찬 시간의 기록이며, 변질된 자아의 자기
고백이고, 금지된 현실원칙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욕망의 기록이다. 그에게
현실과 자아는 불만족스럽다. 지금까지 흘러온 시간은 자신이 지녔던, 혹은
자신이 꿈꾸는 세계와 가까워지기 위한 운동이 아니라 그 원형적 세계와 자
아로부터 변질되고 분리되는 운동의 연속일 뿐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몸은 현재에 머물러 있으나
마음은 자꾸 과거를 지향한다
내가 움켜쥐었던 그 많던 꿈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손톱에 갇힌 열 개의 반달이
조금씩 저물어 간다
-「 손금에 갇히다」중에서
와 같이 종종 “몸은 현재에 머물러 있으나/ 마음은 과거”의 기억을 지향
하기도 한다. 그가 도달한 곳은 바로 “많던 꿈들”이 사라지고 “손톱에 갇
힌 열 개의 반달이/ 조금씩 저물어”가는 부재와 소실의 지점이다. 조금씩
바스라져 가는 실존적 운명, 그러나 그것은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
니라 존재자의 현실적 존재만을 부정하는 하는 것이다. 시인은 이러한 현
실적 존재의 부정을 통한 긍정, 혹은 원형적 자아의 본질적 회복을 꿈꾸는
것이다. 이러한 부재와 소실은 존재에 대한 물음의 절박성 내지는 존재 전
환의 가능성을 탐문하는 것이다. 그것은 앞서 제시한「거라」나「인형뽑
기」에서처럼 폐쇄된 영역 속에 갇힌 인간에게 존재의 새로운 경험을 가능
하게 한다. 중요한 점은 소실과 부재의 확인을 통해 “확철대오 방문 박차
고”(「개구리에게 배우다」) 나가는 존재 전환을 꿈꾸는 지점에서 찾아야 한
다. 그 지점에 전건호 시의 또 다른 매력인 일상에서 건져 올린 유쾌하고
발랄한 상상력이 드러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가령,
꾸벅꾸벅 졸고 있는 치마 밑으로
잽싸게 들어가버린 빈 병
기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빼꼼 얼굴만 내밀고
좀처럼 나오려 하질 않는다
끈끈하게 더듬어 쭈글쭈글해진 몸으로
달그락달그락
세상 모르고 조는 여자의 가랑이 사이를
뻔뻔하게 들락거린다
-「 아이러니」중에서
와 같이 노래할 때 인데, 일상에서 목도한 사소한 일을 재치 있게 묘사
하는 시적 진술이 이 시의 묘미이다. 전철의 실내등이 갑자기 꺼지고 에어
컨도 일순간 멈춰버린 돌발적인 상황에서 화자는 유쾌한(?) 상상력, 아니
다소 성적 상상력을 발동시키면서 갈증에 목이 타고 가슴에 땀이 흐르는
갑갑한 상황을 성적 상상력으로 치환한다. 그 갑갑한 상황과 대비되는 성
적 행위의 병치가 이 시의 묘한 매력일 텐데, 이처럼 일상적 경험의 공간
에서 시의 의미 자질을 더 많이 길어 올릴 때 그의 시는 한층 더 아름다워
보일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시가 일상성 저편을 꿈꾸지 않고, 일상 안에
서 벌어지는 욕망의 생태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바꾸어 말하자면 문면에
그대로 드러나는 공허함이나 무력감, 불안감 등의 도식을 빌리지 않고 실
존적 운명을 드러낼 때 미학적 성취를 한결 더 증폭시키는 것이 아닌가 한
다. 사소하고 하찮은 행위, 별것 아닌 사건으로 이루어진 일상적 삶의 영
역에 감추어진 어두운 실존의 의미를 밝혀내는 일이 어쩌면 시의 구체성
을 보다 확실히 획득할 것으로 여겨진다.
전건호의 시집은 삶을 척박하고 고단한 것으로 드러내면서도, 그것을
긍정하고 삶에의 의지를 확인한다. 그에게 있어서 삶의 비극적 운명이나
허무적 속성에 대한 긍정은 허무나 비극에 빠져 한탄하거나 좌절하는 것
이 아니라 넓은 의미에서 삶에 대한 긍정으로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삶에 대한 비극적 인식이나 허무적 속성 안에 이미 그것에 대한 구원이 놓
여 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헛된 삶의 운명을 긍정함으로써 비로소 우리
는 그 안에서 최소한 의미를 길어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삶은 어
쩌면 헛된 욕망과 믿음에 사로잡힌 채로 종말을 향해 치닫는 것에 다름 아
니다. 그러나 전건호의 시집이 그 실존적 운명의 씁쓸함만을 노래하는 것
이 아니다. 그의 시집은 삶을 진정으로 응시하고 깊이 체험하는 가운데 얻
어진 것이라는 점에서 빛을 발한다.
김홍진 교수
* 2004년《시와정신》으로 등단.
* 비평집으로『부정과 전복의 시학』
『현대시와 도시체험의 미적 근대성』등이 있음.
* 한남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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